비전으로 경영하라

초기 창업자는 자신감이 충만하고 열정이 넘친다. 그래서인지 '나만 믿고 따라와' 같은 말은 종종 하는데 이런 태도는 솔직히 별로다. 못 믿겠다는건 아니다. 믿으니까 말도 섞지. 다만 너만 믿고 가기에는 불안하다. 아무리 뛰어난 사람이라도 개인의 지식과 시야와 능력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니까. 개인의 자신감이나 호불호 그리고 서로간의 신뢰를 뛰어넘는, 의사 결정과 동기 부여를 위한 보다 높은 기준과 목표가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비전!

"세계 각지의 신화와 종교에 공통적으로 나오는 영웅의 여정은 스타트업을 떠올리게 한다. 새로운 회사와 제품은 모두 비전에서 시작한다. 스타트업의 비전은 새로운 것에 대한 희망이며, 극소수만 이해하는 목표다. 창업가의 비전이 가진 열망과 강렬함이 기존 기업과 스타트업 CEO를 구분하는 자질이다" - 스티브 블랭크

아무리 어려워도 똘똘 뭉칠 수 있는 집단의 형태는 결국 두 가지. 하나는 의리로 똘똘 뭉친 의협 집단이고 다른 하나는 비전에 감화된 일종의 종교 집단. 그런데 의협 집단은 유비 관우 장비 같은 3총사 이상의 규모를 넘기 어렵다. 그 중에 나보다 뛰어난 사람이 있을 가능성도 낮다. 하지만 위대한 비전은 특별한 사람들을 모여들게 하는 힘이 있다.


애플의 부사장이었던 제이 엘리엇이 애플 퇴사자에게 애플의 어떤 점이 가장 그립냐고 물으니,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원대한 비전과 함께, 회사 전체로 파문처럼 지시사항을 전할 수 있는 최고경영자와 임원진입니다.' 이는 이른바 해적 조직을 표방하는 애플의 강점과 더불어 비전의 중요성을 가장 잘 설명하는 말일 것이다.

비전은 사명을 이루기 위한 경영자 개인의 역량을 뛰어넘는 위대한 가치 제안. 비전은 조직 구성원의 의욕을 불러 일으키며 고객과 투자자를 감동시킨다. 어려운 선택의 갈림길에서 의사 결정의 기준이 되기도 한다. 비전은 모든 의사 결정의 기준이며 사업을 영위하기 위한 대내외적 명분인 것이다. 경영자의 본질적인 역할은 비전을 제시하고, 그것을 이루기 위한 목표와 크고 작은 목표들 사이의 우선 순위를 정하여, 어떻게든 실행해 나아가는 것이다.

사장의 지상 과제는 ‘생존’ 아니냐고? 물론 생존이 중요하지만 전부는 아니다. 벤처 사업은 실패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따라서 비전 없는 생존은 결국 표류와 다름 없다. 쪽배를 타고 변화무쌍한 망망대해를 해쳐 보물섬을 찾아 나아가려면 적어도 멀리 아득히 보이는 별빛이라도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비전이 밥 먹여 주는건 아니지만 적어도 길을 잃지 않게 도와준다. 스스로도 상상하지 못하는 꿈이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겠는가? 하늘을 목표로 삼지 않으면 종탑도 치지 못한다.


비전의 가치를 부정하는 사람은 비전에 사로집히면 생각이 편협해지거나 뜬구름만 잡으려 든다고 말한다. 생각이 편협해지는 이유는 비전이 충분히 크고 위대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니면 원래 그런 성격이거나. 뜬구름만 쫒는 이유는 비전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너무 당연하게도 비전의 존재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로드맵과 비전도 다르다. 비전이 방향 또는 궁극의 지향점만 가리키는 것이라면 로드맵은 구체적인 계획이나 목표 따위를 포함한다. 흔히들 말하는 큰 그림은 비전 보다는 로드맵에 가깝다. 로드맵이 말 그대로 지도라면 비전은 북극성. 변화무쌍한 정글 또는 사막 같은 기업 환경에서 지도는 언제든 바뀔 수 있기에 방향을 가늠할 북극성이 필요하다.

사실 핵심 가치만 명확하다면, 비전 없이도 당장 사업을 꾸려가는데 큰 지장은 없다. 하지만 비전이 없다면 전에 없던 새로운 가치를 발굴하기는 어렵다. 기존의 가치에 변화가 요구되는 상황에 대응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그리 길지 않은 익숙한 여정이라면 일단 당장의 목적지만을 향해 가더라도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미지의 세계로 머나먼 텀함을 떠나는 것이라면, 저 멀리 북극성을 바라보며 나아가야 길을 잃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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