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퍼텍스트 시대의 읽기 습관

대딩때 교육학과 수업에서 하이퍼텍스트 이론을 접했다. 하이퍼텍스트 좋은건 충분히 알겠는데 그래도 전반적인 읽기 습관이 비(직)선형적으로 바뀔 것이라는 전망은 좀 오바 아니겠냐는 발표를 했는데, 지금 생각해도 얼추 맞는 말 같다 ㅎㅎ

하이퍼텍스트 시대의 읽기 습관은 비선형적 연속성을 띌 것이라는 전망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기술적으로는 비선형적이고 연속적인 읽기 환경이 구현되었지만, 읽기 습관은 오히려 분절되었고 수동적으로 변했으며, 컨텐츠는 원자화 되었다.

사람들은 정보의 바다를 적극 탐험하기 보다는, SNS 피드가 내가 좋아할 컨텐츠를 알아서 보여주길 기다린다. SNS는 분명 유용하지만 기존 관심사만 공고히 하는 측면이 있다. 무엇보다 내 관심사를 누군가 조종하 수 있다는 가능성은 꺼림칙하다.

단절되고 수동적인 읽기 습관은 정보 피로에서 비롯한다. '우리는 바빠서 시간이 없다. 최신 동향을 따라잡지 못하면 뒤쳐진다. 인터넷에는 정보가 너무 많다. 시간을 낭비하지 않으려면 꼭 필요한 정보만 골라서 최대한 빨리 훑어봐야 해.'



정보가 많다는 사실을 제외하면, 우리의 정보 피로감은 그릇된 편견일 수 있다. 우리는 의외로 많은 시간을 낭비한다. 살면서 어떤 정보가 어떻게 도움이 될 지 정확히 알 수 없다. 창의성은 뇌가 깊이 읽은 정보를 처리할 때 나온다.

사실 쓸데없는 정보란 없다. 내가 어떤 분야에 관심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는, 그것이 따분하고 무가치해서가 아니라, 단지 내가 잘 모르기 때문. 아는 만큼 보인다. 보고 들은 모든 지식과 정보는 뇌에서 끊임없이 융합한다.

창의성은 이종교배 즉 서로 다른 분야의 접점에서 생겨난다. 어차피 정보는 차고 넘친다면, 분야를 막론하고 흥미로운 정보를 천천히 음미하는 편이, 선별된 정보를 숙제하듯 빠르게 훑는 것 보다 낫다.

모든 정보를 놓치지 않으려는 강박을 가질 필요도 없다. 놓친 정보는 흘러가게 두라. 북마크 관리도 너무 열심히 할 필요 없다. 최신 동향은 최신 동향일 뿐. 여러 문서를 옮겨다니며 대충 읽고 마는 습관은 뇌를 산만하게 만들 뿐.


웹에서 다양한 분야의 창조적 연결점을 찾는 방법으로는 하이퍼링크를 계속 따라가는 고전적 웹서핑 만한 것도 없지만, 여러 맥락을 쉴세없이 넘나드는 비선형적 읽기라는 점에서 산만한 측면이 있다.

연결을 무제한 뻗는 하이퍼텍스트의 비선형성은 사람의 연상 과정을 닮았다. 하지만 새로운 정보를 습득할 때 뇌는 복잡도를 거부하고 단순함을 취한다. 따라서 사람은 보통 선형적으로 읽고, 맥락 하나를 완전히 끝내야 성취감을 느낀다.

이런 점에서, 비선형적 연속성을 가진 하이퍼텍스트 환경과 (직)선형적이고 연속적인 읽기 습관을 동시에 활용하는 것이 보다 현실적인 대안 아닐런지. 이러한 읽기 경험은 이미 인터넷 신문사나 블로그에서 일부 제공되고 있다.

하이퍼텍스트는 그 자체로 웹의 본질이며 여전히 강력하고 신뢰할만한 관련 콘텐츠 추천 수단. 이를 활용한 편리한 읽기 도구 제공한다면 매우 유용할 듯. 그런데 하이퍼텍스트는 시점이 대부분 과거로 향할 수 밖에 없기는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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