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차 예비군 동원 훈련을 마치고 집에 가는 시외 버스를 기다리다 우리 생태계를 망친다는 주홍꽃 매미를 밟아 죽였다. (사실 생태계를 망치는건 매미가 아니라 바로 인간이지만.) 이 벌래는 여간 꽉 밟지 않으면 단번에 죽지 않는데, 밟을 때 마다 새빨간 속 날개를 드러내며 위협한다. 머지 않아 매미 주검에 까만 개미 한 마리가 달라붙어 이리 저리 살핀다. 단번에 살점을 떼지는 않는다. 희미한 생명의 불꽃은 스러졌지만 여전히 빨간 속 날개는 생존 의지를 드러내며 살해자를 저주한다.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군대는 참 한결같다...ㅋ 격식과 질서는 물론 비효율과 지루함까지. 글쎄, 세상의 효율을 가장한 비효율 보다는 어쩌면 조금은 더 인간적일까? 다들 지루하네 짜증나네 툴툴대지만 사실 세상에서 쉽사리 경험하지 못할 느림과 고참 대접을 은근 즐기는지도. (근데 그래도 2박 3일은 너무 길다! 1박 2일이면 딱 적당.) 이제 현역 복무중인 스무살 남짓 꽃다운 청년들을 골리며 내 청춘을 빼앗긴 피해 의식을 조금은 위로해 본다.
나는 세상과 단절된 이 삼일간의 휴가에는 항상 책을 들고 간다. (물론 내 방에서 훨씬 편하게 책 볼 수 있지만 세상에서는 뭔가 쫓기는 마음으로 살다 보면 막상 눈에 잘 안 들어온다. 언제나 마음만 급하다.) 짬짬이 읽어야 하기에 상상이 필요 없는 실용 서적 따위가 좋은데 이번엔 언젠가 꼭 한번은 읽어야지 읽어야지 했던 소설을 가져갔다. 나는 되도록 천천히 책을 읽으며 머리 속에서 천천히 그림 하나 하나를 그려보았다. 다 읽은 책은 넉살 좋은 채주원 일병에게 건네줬다.
후덥지근한 24인용 텐트 아래서 나는 14세기 유럽의 아름다운 풍광을 넘나드는 자아발견을 향한 그 무모한 여정에 동행했다. 헤르만 헤세의 지와 사랑을 읽고 벅찬 감동 또는 공감을 느끼는 사람이 조금만 더 많았더라면 이 세상은 더 살기 좋았으리라. 나는 서른 나이에 비로소 이 오래된 책을 빼 들었고 내 가슴은 오랜만에 진한 감수성으로 벅차 오른다. 만일 십대에 봤다면 이 고전은 내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았겠지? 아니 어쩌면 오히려 이교도의 불온서적이 되었을지도?

누군가는 날 더러 욕심이 많다, 너무 서두른다, 방황한다 말들 하지만, 지난 30년간 나는 나 자신과 나를 둘러싼 모든 한계를 힘겹게 돌파하며 오직 자아발견을 향해 여기까지 왔다. 감히 신 앞에 나선다 해도 당당히 말할 수 있다. 지금껏 난 정말 열심히 해 왔다고. 입시 지옥을 거치며 노예가 되어버렸지만 결국 안전한 돼지 우리를 떨치고, 세상과 나를 치열하게 통찰하며. 그리고 이토록 부조리한 세상을 방치하는, 이런 험한 곳에 나약한 나를 낳은 신을 원망한다. 골드문트 처럼.
나의 여정은 순진한 노력, 후회와 원망, 자유와 배움에 대한 갈망, 고결한 소망과 여유, 그리고 모험에 대한 불안감으로 뒤섞여있다. 나는 이 모든 것들을 필생의 작품에 담아 내려한다. 그리고 그것으로 세계(한국이 가장 심하다.) 교육 문제 해결에 이바지하련다. 8년 전 대학교 3학년, 목숨 바쳐 들어온 대학에 깊은 회의를 느끼며, 대충 학점이나 잘 받으려고 들어갔던 교육학 수업 조모임에서 만난 이반 일리치의 탈학교론. 나는 그 자리에서 말 그대로 무릎을 쳤다.
탈학교론은 일반인에겐 아직 생소하지만, 1970년 선각자 이반 일리치는 학교 공교육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교육 네트워크 센터라는 이상론적 대안을 내놓았다. 근데 이는 웹의 발달로 이제 현실이 되었다. 우리는 웹에서 정보와 동료를 만난다. 이제 세계 명문대 강의도 무료로 들을 수 있다. 미국에선 웹을 통한 교육 실험(이른바 edu 2.0)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으며, 얼마 전 까지도 성공하려면 명문대 나오라던 하버드 중퇴생 빌게이츠 조차 이제 5년 안에 기존 대학은 크게 쇠퇴할 것이라 말한다.
처음엔 글로서 교육 문제와 해법을 알리려했다. 하지만 관습에 발 딛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관념 보다는 밥, 제도 따위의 보다 실제적인 것을 요구한다. 그래서 2년 전부터 웹 서비스 창업을 준비해왔다. 등록금, 출석, 시험 따위 필요 없는 인증서를 만들 것이다. (졸업장 따는데 낭비되는 막대한 자원과 시간을 보다 좋은 곳에 쓴다면 이 세상은 훨씬 더 살기 좋아질 것이다!) 인증 근거는 사람들의 웹을 통한 학습 활동. 근데 요즘엔 다들 소셜 웹에서 정보를 얻기에 서비스에 트위터 컨셉을 적용했다.

그런데 사람들은 혁명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현실이 아무리 고달프고 진보와 개혁이 우리의 삶을 진정 풍요롭게 할 지라도. 그래서 겉으로 내세우는 컨셉은 보다 쉬운 트위터. 초보자는 적응하기 쉽고¹ 고수들에겐 정보 관리가 쉬운. (현재 트위터 회원은 약 1.5억 명이며 이 중 초보자가 70%.) 보다 쉬운 소셜 웹 서비스를 만들고자 게임 요소를 접목하다보니 아주 자연스러운 소셜 커머스(마케팅) 아이디어까지 녹아들었지만, 내가 여기에 담는 궁극의 의지는 8년 전과 마찬가지로 교육 개혁.
한국에도 지금까지 수 많은 트위터 카피가 나왔지만 이렇다 할 서비스는 없다. 일단 세계 시장이 아닌 국내 시장만을 대상으로 했고, 트위터의 장단점을 분석해서 거기에 뭔가를 조금 더 더하고 뺐을 뿐 그 이면에 깔린 근본 욕구에 대한 통찰이 부족했다. 그리고 처음부터 트위터와 비슷하게 만들자는 의도에서 시작했다면 결국 아류가 될 수 밖에 없다. 아무도 구글을 야후 카피라 하지 않는다. 비록 같은 장르와 형태의 후발 주자라 할 지라도 그 속엔 새로운 통찰이 담겨있기 때문.
우리 서비스는 분명 트위터가 개척한 마이크로 블로그라는 장르에 속해있다. 하지만 처음부터 트위터를 베끼려는 의도가 아니었고 교육 개혁에 가장 유효한 수단을 고민하다 트위터의 형태로 수렴했다. 또한 트위터 이면에 깔린 사람들의 근본 욕구와 트위터가 왜 성공할 수 밖에 없었는지 치열하게 고민했다. 트위터의 뛰어남 앞에 감탄과 좌절을 수 없이 반복했지만, 나는 결국 트위터가 건드리지 않은 혹은 놓치고 있는 사람의 근본 욕구를 찾아냈다. (여기서 기존 기획에 큰 수정이 있었다.)
각 페이지 단위의 세부 기획을 마무리했고 프로토타입(파이썬, 장고 프레임웤 사용)도 나왔다. 이제 본격적으로 몇 달 개발할 개발자가(자금이) 필요하다. 괜한 호들갑과 창업 멤버 언론 노출은 자제할 생각이다. 나는 창업을 통해 세계 교육 문제 해결에 기여할 것이며, 따라서 (별로 원하진 않지만) 3년쯤 뒤엔 세계적 명사 반열에 오를 것이다. 미친거 아니냐고? 이 정도 사이즈 아니라면 처음부터 시작도 안했다. 조용히 은근히 젖어들다 어느 순간 터지는, 단순한 성공이 아닌 혁명을 이루련다.
¹덧: 지금은 초보자 적응 보다는 사생활 보호에 더 무게를 두고 있다. - 2011. 8
¹덧: 지금은 초보자 적응 보다는 사생활 보호에 더 무게를 두고 있다. - 2011.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