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다못해 온라인 쇼핑몰에서 뭐라도 하나 팔아보는 것이 사업에 도움이 된다는 조언을 종종 들었는데, 실제로 해보니 확실히 도움이 된다. 도움 되는 측면은 다름 아니라 원가 구조가 극단적으로 단순한 상황을 경험한다는 것이다. 이런 경험이 복잡하고 모호한 상황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경계할 수 있도록 조금이나마 참고가 될 듯.
초기 온라인 쇼핑몰 판매에 있어 원가와 판매 가격은 정해져 있다. 불확실한 요소는 과연 구매가 얼마나 많이 발생할지 뿐인데, 심지어 하나도 팔리지 않는다 한들 내가 입을 손해의 최대치는 빤하다. 처음부터 큰 욕심만 부리지 않는다면 감당 못할 위험에 빠질 일은 없다. 이렇게 원가 구조가 명확한 이유는 당장 인건비 발생하지 않기 때문. 온라인 쇼핑몰 판매가 어지간히 잘 되지 않는 이상 처음부터 인건비가 들지는 않는다.
직원 월급 줘 보면 시간은 곧 돈이라는 말이 실감된다. 인건비는 장사가 잘되건 말건 달마다 따박 따박 발생한다. 원가 구조에 인건비가 포함되는 순간 사업의 복잡도는 말 그대로 차원이 달라진다. 내가 입을 손해의 최대치도 한계가 없다. 사업은 시간이 흐를 수록 자본을 삼키는 블랙홀이 되고 만다. 원가 괴물에 잡아먹히지 않으려면, 괴물을 봉인할 충분한 매출을 만들거나 잡아 먹힐 시점을 당분간 뒤로 미뤄줄 투자금을 끌어와야 한다.
스타트업 IT 사업은 원가 구조가 모호하다. 판매 가격은 커녕 무엇을 팔 지도 정해져있지 않은데, 원가 구성 대부분은 인건비. 들어올 돈은 기약이 없는데, 들어갈 돈은 가늠하기 어렵다. 한 마디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밀 빠진 독이 꼭 나쁜 것은 아니다. 잠재 가능성이 클 수 있다. 대기업도 R&D 명목으로 씨를 뿌린다. 하지만 대기업 R&D 지출 규모는 매출의 극히 일부.
식당 매출은 객단가와 회전을 곱한 값인데, 식당 객단가는 뻔하다. 유명 맛집 메뉴 구성과 상차림이 단촐한 이유는 결국 회전을 높이기 위함이다. 반면 스타트업 객단가는 천차만별. 광고로 매출 낸다는 말은 다른 말로 객단가가 극단적으로 낮다는 것이고, 그렇다면 회전이 말도 안되게 높아야 하므로 구글 유튜브 인스타그램 만큼 많은 사용자의 빈번한 재방문이 필수적이다.
현금 흐름은 기업에게 있어 피와 같다. 아무리 고귀한 사람도 피가 마르면 살 수 없듯이, 참신한 시도를 하는 혁신 기업도 돈이 마르면 빚에 짓눌려 망하고 만다. 사람은 궁지에 몰리면 무리수를 두기 쉽다. 원가 구조가 감당 가능한 범위를 넘어서면 이성은 마비되고 어떻게든 되겠지 심정이 되곤 한다. 기왕 칼을 뽑았으니 무라도 잘르겠다는 근성과 책임감은 스스로 빛더미 블랙홀로 뛰어드는 동인이 되기도 한다.
남들은 보지 못한 가능성을 감지하고 밑 빠진 독에 물을 붓기로 했다면, 스스로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조금씩 오래 부어야 한다. 본격적인 사업 전개에 앞서 일을 작게 줄일 수록 구조는 단순하고 명확해진다. 사용자 반응도 검증하지 못한 채로 이루어지는 온갖 기능 추가나, 추측과 가정이 난무하는 엑셀 산식으로 이루어진 자금 조달 계획 수립 따위는 의미가 없다. 잠재 고객 또는 투자자를 미리 만나봐야 한다. 싸워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이겨 놓고 싸워야 한다.
스타트업 사업이 온라인 쇼핑몰 단순 판매 만큼 명확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지만, 가능한 모든 상황을 명확히 하려고 애써볼 필요는 있다. 사업 계획서 작성하거나 사람을 뽑는 것은 그 다음이라도 늦지 않다. 그 전 까지는 개인 취미나 사이드 프로젝트로 진행해도 충분하다. 어떤 일에 인생을 걸고자 한다면, 섣불리 일을 벌일 것이 아니라, 먼저 오래 버틸 구조와 여건을 먼저 만들어야 한다. 기업가로서 세상을 바꾸고자 한다면, 가장 먼저 극복할 적은 다름 아닌 내 안의 조바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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