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 크고 방향이 명확한 경영자는 쓸데 없이 큰 그림 따위 그리지 않는다. 계획 꼼꼼히 세워봐야 어차피 달라질 것을 아니까. 최소 기능만 갖춘 시제품도 당초 계획과 결과물이 다른데 먼 미래는 말해 뭐해.
(실은 어중간한) 큰 그림 버리고 목표와 방향에 집중하면 과업의 우선 순위가 명확해진다. 최종 목표에 도달한 모습은 가늠하기 어렵지만, 징검다리 위에서 앞으로 나가기 위해 다음 발 디딜 지점은 알 수 있다.
그런데 목표를 빨리 이루려고 조바심 내다보면 큰 그림에 집착하게 된다. 머리 속 그림을 모두 구현하면 꿈을 이룰 것만 같다. 그러니 그림의 작은 일부라도 빠지면 곤란하다. 답은 정해졌으니 서둘러야 한다.
이러한 큰 그림은 십중팔구 의미 없는 신기루. 결국 본인 스스로도 외면할 괴물을 낳을 가능성이 높다. 정신 차려보면 이미 너무 많은 시간과 노력을 허비한 다음. 그나마도 정신을 차리면 다행이지만.
이렇듯 부질없는 큰 그림에 집착하는 현상은 특히 초기 창업 단계에서 자주 나타난다. 그래서 나는 이를 ‘초보 창업 증후군' 또는 '큰 그림 증후군'이라 부른다. 공통 증상은 대략 다음과 같다:
- 모든 계획이 하나 같이 중요해서 우선 순위가 없다.
- UX 맥락 고려하지 않고 평소 좋다고 느낀 UI 따라한다.
- 계획한 요소나 기능이 하나라도 빠지면 큰일 나는 줄 안다.
- 변화를 사고라 여기고 어떤 상황이든 당초 계획만 고수한다.
- 매출 계획은 못 지켜도 비용 집행 계획은 철저히 지킨다.
- 모든 사안을 자존심과 결부시켜 예민하게 반응한다.
이러한 증상의 원인은 최초 계획에 대한 집착, 단번에 목표를 이루려는 조바심 그리고 스스로에 대한 과신에 있다. 따라서 제법 성공한 이후에도 발현될 수 있다. 이를 예방하려면 스스로에 대한 건전한 의심과 합리적 자성이 필요하다.
제품 또는 서비스 만들다보면 자꾸 기능을 더하고 싶기 마련이다. 그런데 기능이 많을 수록 복잡도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좋은 제품과 서비스는 가장 적은 기능으로 목적을 달성한다. 최소 투입 최대 산출은 경영의 기본.
손자께서는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라 했는데, 나는 간절함과 성급함만 구분해도 위험을 면한다 말하고 싶다. 간절함과 조바심은 이어지는 때가 많고 느낌도 비슷해 혼동하기 쉽다. 그런데 사실 둘 사이에 명확한 인과관계는 없다.
로켓처럼 치솟는 스타트업도 실은 단계 단계 징검 다리 밞아 가는 것이다. 속도 올려도 단계를 건너뛸 수 없다. 조바심에 여러 단계 단숨에 넘으려 들면 실족한다. 낙상 정도로 끝나면 다행인데 자칫 잘못하면 궤도를 이탈한다.
조급하면 일을 그르친다. 급하면 될 일도 안된다. 서둘러 애먼 일에 힘 빼고 나면 정작 기회가 왔을 때 치고 나갈 여력이 없다. 급할 수록 돌아가라는 말은 인생의 진리. 차분하게 속도 내는 비법은 선택과 집중 그리고 우선 순위.
스티브 잡스의 성공 요인은 다름아닌 선택과 집중. 그런데 큰 그림 증후군 걸린 리더가 잡스의 괴팍한 성격과 고집만 따라하는 경우가 많아 이를 잡스병이라 한다. 잡스병 환자는 경주마처럼 낭떠러지를 향해 앞만 보고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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