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한국 현대사

나는 매일 아침 조선일보 배달되던 집에 태어났다. 논술 시험 대비한답시고 가끔씩 사설도 읽었다. 정수리에 새똥이 백발처럼 얹어진 우남 동산 이승만 동상 앞에서 아무렇지 않게 도시락을 까먹었다.

대학생이 되었지만 윤동주 시비와 이한열 열사 추모제 의미를 몰랐다. 신문 본답시고 처음부터 끝까지 작은 글씨까지 읽기도 했는데, 보면 볼 수록 세상에 관심이 가질 않고 결국 다 똑같은 놈들 같았다.

인터넷과 블로그가 나를 깨웠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현대사를 알고부터 세상이 보였고, 세상에 눈을 뜨니 신문이 재미있었다. 큰 글씨 제목만 훓어도 흐름이 보였고, 사실 왜곡하고 논점 흐리는 수법도 보였다.

세상을 알고나니 분별이 명쾌해졌고, 최악이 보이고 나니 이해되지 않는 것들 투성이었다. 21세기에 친일파 군부 독재 래거시 정당이 득세한 상황이, IMF 외환 위기 원흉이 경제 살린다며 설치는 뻔뻔함이.

세상에 절반 쯤 되는 사람들이 진실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고, 지인과 정치 이야기 하며 목청을 높였다. 그렇게 하면 세상이 조금이라도 나아질 줄 알았다. 부모님은 머리 굵은 자식을 버거워하기 시작했다.

홍성담 화백 세월오월 / 이미지 출처: 한국일보

기대와 달리 박근혜 대통령 당선을 보게 되었다. 어느 신문 만화 만평처럼 가슴에 구멍 뚫린 심정이었다. 촛불 혁명 이후에도 세월호 진실은 여전히 오리무중이고, 이제는 윤석열 당선을 목도하게 되었다. 

이제는 안다. 사람은 합리적이지 않다는 것을. 아직도 냉전 시대 사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세상을 조금이라도 바꾸려던 순진한 열망 만큼이나, 나라 팔아먹어도 새누리당이라던 어르신 고집도 크다는 것을.

역대 최고 미국 대통령 중 하나인 오바마도 놓친 부분이 있었고, 그 틈을 파고들어 트럼프가 득세했다. 수구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비슷한 사람끼리 모여 하고 싶은 말만 떠든다고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

소련에 대한 러시아 국민의 수구적 향수가 푸틴을 키웠다. 수구 세력은 단지 시계를 뒤로 감는 것이 아니라 태엽을 망가뜨린다. 트럼프는 파리 조약 탈퇴했고, 푸틴은 전쟁을 일으켰다. 한국에도 뿌리 깊은 수구 세력이 있다.

비교적 나은 정도로는 수구 세력을 잠재울 수 없다. 외면할 수도 없다. 국가는 운명 공동체니까. 수구 극복하려면 단기적으로는 압도적으로 나은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장기적 근본적 대안은 오로지 교육 aka 百年之大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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