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찰 관리 사내 정치

사람 환심 사는 방법은 간단하다. 상대가 듣기 원하는 말을 파악하여 그것을 해주면 된다. 아니면 그저 상대가 떠들 때 적당히 맞장구만 쳐도 된다. 이 마저도 귀찮다면 그냥 입을 닫으면 된다. 성경 말씀처럼 입만 다물고 있어도 중간은 간다.

사람의 두뇌는 기본적으로 이성적 분별 보다는 니 편 내 편 가르는데 훨씬 많은 자원을 할해한다. 알량한 자존심 지키기 위해. 그런데 이러한 방법으로는 환심 사는 것 까지만 가능. 결국 누군가와 무언가 제대로 도모하려면 마찰이 필요하다.

스타트업 경영할 사람이 마찰과 아규가 싫다면 길을 완전히 잘못 들은 것일 수도 있다. 초기 기업에서 갈등 없이 평화롭게 의사 소통이 충분히 되었으면 하는 바램은 독심술 축지법 하겠다는 것과 별반 다를 바가 없다. 평화롭게 소통하는 척은 할 수 있을지 몰라도 최고를 추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나 같은 사람 몇 명만 더 있으면 뭐든 할 수 있겠다는 말도 의미 없다. 세상에 같은 사람은 없다. 도플갱어 만나면 죽는다는 말 처럼. 나와 똑같은 사람이 몇 명 더 있다 쳐도 소통이 잘 되기는 커녕 오히려 답답해 돌아가실 것이다. 자기 분신과 싸우며 자기 자신이 얼마나 고집 쎄고 결함 많은 존재인가 자각하게 될 것이다.

‘유능한 세션을 고용했어. 지시대로 정확히 연주했지. 그게 문제였어. 너희처럼 반대하며 싸우거나 곡을 새롭게 쓰거나 웃기게 만들지 않더라고.’ -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中

마찰이 없으면 창의도 없다. 피린체 르네상스도 실리콘벨리 기술 혁신도 다양성 마찰의 산물. 다만 별 것도 아닌 일로 지나치게 흥분할 필요는 없다. 싸움을 하더라도 쟁점이 있어야 한다. 별 것도 아닌 일로 지나치게 흥분하거나, 쟁점과 논의 수준이 후진 소모적인 마찰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런 경우 리더가 즉시 개입해서 조기에 진화해야 한다.

다시 말해 좋은 리더는 건전한 마찰은 장려하고 소모적인 마찰은 제거한다. 그런데 보통은 반대로 한다. 건전한 마찰은 막고 골치 아픈 마찰은 방관한다. 중재자가 확실히 가르마 타지 않고 한 발짝 물러서 다들 사이 좋게 지내면 안되겠니 이러고 있으면, 의도치 않게 사내 정치 원인을 제공할 가능성이 높다. 그나마 괜찮은 사람부터 하나 둘 떠난다.

데일 카네기 | 인간 관계론 中

사람은 감정적인 존재다. 하지만 그래서 조직 운영도 감정적으로 해야 한다는 말은 맞지 않다. 이건 너무 일차원적 접근. 리더의 근본 자질은 냉철함. 여기에 공감 능력까지 갖추면 금상첨화지만, 냉철 없는 공감 만으로는 좋은 코치나 심리 상담사가 될 수는 있지만 좋은 리더가 되기는 어렵다.

감정적인 리더는 특히 분쟁 상황에 취약하다. 내부 분쟁은 리더가 가르마를 타야 조기에 진화되는데, 감정적인 리더는 시비를 가리는 것을 누군가의 편을 들어주는 것이라 여기고, 어느 한 쪽 편만 들면 안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객관적 판단을 회피한다. 이러한 태도는 의도와 달리 문제를 더욱 키운다.

'소뇌에는 기술 형성을 다루는 뉴런이 오백억개나 있고, 피질에는 인지 활동과 합리적 계획을 수행하는 뉴런이 수십억개나 있는 반면, 고차원적 감정을 다루는 방추세포는 팔만개에 불과하다. 방추 세포는 합리적 문제 풀이를 하지 않는다. 그래서 음악을 느끼거나 사랑에 빠지는 일 따위를 합리적으로 통제하지 못한다. 이처럼 신비로운 고차원적 감정의 형성에는 뇌의 모든 영역이 연관되어 있음이 분명하다.' - 레이 커즈와일, 특이점이 온다 中

평화의 파수꾼이 되려면 냉철하고 터프한 보완관이 되어야 한다. 아니면 최소한의 조율만 하는 파이트 클럽 관리자가 되던가. 그저 평화만 부르짖는다고 평화가 실현되지 않는다. 사람은 누구나 스스로 좋은 사람이고 싶고 피곤한건 꺼리기 마련이지만, 좋은 리더는 모두에게 좋은 사람일 수는 없다. 어쩔 수 없이 악역 맡는 핑계로 인간 말종이 되어서도 안된다.

자기 객관화가 안되는 사람은 주류에 속할 때 안정감을 느낀다. 이런 사람은 시비를 명확히 분별하지 못하고 편가르기를 한다. 열의가 있으면 더욱 적극적이다. 그래서 사내 정치 주역은 주로 B급 인재. 간혹 정치질 밖에 못하는 암덩어리 폐급도 있지만. B급 인재 정치질이 조직을 서서히 좀먹는다면 폐급 관종 정치질은 조직을 삽시간에 말아먹는다.

‘사내 정치란 자기 가치나 회사에 대한 기여 이외의 수단으로 자신의 출세나 목적을 달성하려는 형태를 뜻한다. 사내 정치 근원은 대부분 CEO. CEO가 정치적이어야만 사내 정치가 조장되는 것은 아니다. 사내 정치가 극에 달해 있음에도 CEO는 정치와 담을 쌓은 경우가 많다.’ - 벤 호로위츠 | 하드씽 中

조직 내에 옳고 그름의 기준이 명확하지 않을 때, 거창하게 말해 합리가 강 같이 흐르지 않을 때 정치질이 생긴다. 옳고 그름이 명확하지 않으니 정치질로 주장을 관철하는 것이다. 시비 분별은 리더 몫인데, 사람은 대부분 분쟁을 꺼린다. 그저 좋게 좋게 무마하고 싶어한다. 이렇게 덮으면 당장은 편할지 모르나 자칫 정치질의 도화선이 될 수 있다.

기업은 민주적으로 운영될 수는 있지만 민주 집단은 아니다. 권력은 리더에게 집중된다. 리더는 공명정대한 판관이어야 한다. 리더가 그릇된 판단을 잘못하면 구성원은 그 틈을 파고들어 정치질을 한다. 리더가 판단을 회피하면 세를 모아 세싸움을 하고, 권력을 남용하면 아첨을 한다. 이렇듯 리더는 부지불식간에 사내 정치의 원인이 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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