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하는 이유

도대체 우리는 왜 공부하는가? 어느 유명 강사가 우리가 공부를 해야만 하는 이유에 대한 강연 영상을 공유해서 꽤나 화제가 된 적이 있는데, 그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 명문 대학 입학 만으로 성실함을 어느 정도 인정받을 수 있다.
  • 명문 대학의 동문 네트워크에 편입되는 것 만으로도 많은 기회를 누릴 수 있다.


나 역시 이에 동의한다. 하지만 이 영상은 수험생을 자극하기 위해 일부 사례를 지나치게 부풀린 측면도 있다. 또한 결정적으로 공부를 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공부 하는 근본적인 이유를 알아보기 전에 먼저 공부가 무엇인지부터 살펴보자. 공부란 인생을 살면서 우리가 스스로 배우고 익히는 크고 작은 모든 것이다. (따라서 입시 공부는 공부의 극히 일부일 뿐.) 그렇다면 우리가 살면서 무언가를 배워나가는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호기심!

생각해 보자. 공자, 아리스토텔레스, 칸트, 레오나르도 다빈치, 피타고라스, 에디슨 등 우리가 익히 들어 알고 있는 위대한 학자들이 좋은 대학 가려고 혹은 부귀 영화를 누리려고 공부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저들은 그저 지적 호기심을 충족하고자 연구와 탐구를 계속 했을 뿐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실은 공부야 말로 진정한 잉여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위인이나 학자에게만 호기심이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호기심을 가지고 태어난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가고 특히 현대 교육 제도에 편입되면서 호기심은 점차 줄어든다. 호기심 충족을 위해 공부를 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한국 학생의 현실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일 터. 문제 해결을 위해 공부를 한다면 그나마 납득이 될 것이다. 문제 해결 역시 호기심과 더불어 우리가 공부를 하는 근본적인 이유이다. 예를 들어 우리는 배고픔이라는 문제를 해결하고자 라면 끓이는 법을 배웠다.

그렇다면 국영수로 대표되는 입시 공부는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가? 당연히 대학 입학에 관한 문제를 해결한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대학(수준의) 수학(공부를 하기 위한) 능력'을 기르기 위한 것이다. 수학은 자연 과학과 공학은 물론 사회 과학 분야의 기초 과목이다. 또한 현대 학문을 소화하려면 먼저 영어를 익혀야 한다. 왜냐하면 현대의 학문이 서구 사회를 중심으로 발전해왔기 때문에 영어로 된 학습 자료의 양이 절대적으로 많기 때문이다.

한국 수험생 대부분의 절대 과제는 다름 아닌 명문대 입학. 명문대 졸업장이 취업, 승진, 결혼 따위의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라 믿기 때문. 하지만 명문대에 입학 정원은 정해져있다. 그렇다면 명문대에 들어가지 못할 대다수의 학생들에게 입시 공부란 인생에 있어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는가?

누구나 명문대에 들어갈 수는 없지만, 그래도 뭐든 열심히 하면 적어도 그 과정 속에서 근성과 끈기를 기를 수 있다. 인생을 살다 보면 크고 작은 어려움과 이런 저런 과제를 맞닥드리게 된다. 그렇다면 이를 극복해 나아가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바로 근성! 어떤 일을 하던 무언가를 이루어 내려면 결국 근성과 끈기가 필요하다.

근성과 끈기라는 측면에서, 어떤 목표를 향해 매진해본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이는 크다. 어떤 일을 열심히 해 본 사람은 다른 일도 열심히 할 가능성이 크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다른 일도 잘 못할 확률이 높다. 물론 적성이 중요할 지도 모르지만 적성도 결국에는 근성과 끈기가 바탕이 되어야 제대로 발휘될 수 있다.

지금 하는 일은 열심히 하지도 못하면서, 좋아하는 일을 찾으면 잘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은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어리고 자기 중심적으로 느껴질 뿐이다. 과거에 일을 열심히 잘 해낸 경험이 있으니, 좋아하는 다른 일이 주어지면 더 열심히 잘 할 수 있다는 주장이 훨씬 설득력있다. 그러니까 지금 하는 일을 적어도 열심히라도 해야 다른 일을 맡을 기회도 생기는 것이다.

회사에서 명문대생을 선호하는 이유도 바로 근성 때문이다. 명문대에 가려면 입시 과목에 대한 지적 호기심, 또는 난관을 극복하고 노력하여 성취하려는 근성이 하필이면 적어도 15세 이전에 죽지 않고 최대 출력으로 발현되어야 한다. 물론 이러한 근성이 계속 유지된다는 보장은 업지만, 앞서 말팼듯이 기업은 살면서 근성을 한 번이라도 발휘해 본 사람을 원한다.

물론 단지 근성을 기르고자 무턱대고 아무거나 열심히 할 필요는 없다. 열심을 내기 이전에 내가 무엇을 할 지를 찾는 것도 중요하다. 앞으로 내가 무엇을 할 지를 알 수 있다면 지금 나에게 꼭 필요한 것만 찾아서 할 수 있을테니. 그런데 꿈을 찾기란 생각처럼 쉽지가 않다. 평생 발견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이는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다.

우리는 신이 아니기에 우리가 미래에 무엇을 하게 될지 정확히 알 수 없다. 인생의 본질은 막막함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앞으로 꼭 필요한 것만 찾아서 배우기 어렵고, 지금 배우는 것이 앞으로 어떻게 쓰일 지도 알 수 없다. 이러한 삶 가운데, 근성과 끈기는 앞으로 무엇을 하든 필요한 덕목이며, 인생의 막막함을 견디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다. 따라서 내가 무엇을 해야 할 지는 모르겠는데 일단 지금 주어진 것이 입시 공부라면 이거라도 열심히 해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입시 공부는 정말 싫고 지금 뭘 해야 할 지도 모르겠다면 하다못해 무엇을 할 지 찾는 행위라도 열심히 해 볼 필요가 있다. 입시 공부가 아닌 다른 것으로 인정받기는 입시 공부로 인정받는 것 보다 훨씬 더 어렵다. 그렇다고 열심히 하려는 의욕이 지나쳐서 너무 조급할 필요는 없다. 한걸음씩 차근차근 나아가면 된다. 조급함과 근성은 다르다. 진정한 근성은 여유를 낳는다.

누가 어떤 상황에서 무엇을 공부하느냐에 따라 효과적인 공부법은 다르겠지만, 거의 모든 공부에 공통적으로 필요한 능력은 바로 근성과 독해(읽고 이해해는) 능력 그리고 검색 습관이다. 어떤 방식으로든 근성, 독해 능력 그리고 검색 습관을 갖춘다면, 각자에게 맞는 공부와 공부 방법 또한 스스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심화자료: 심리학과 인지과학을 바탕으로 한 공부법: http://curriq.com/course/101

그런데 입시 위주의 교육은 학생 스스로 무언가 탐색하는 능력을 기르기는 어렵다. 학교 공부가 쉬운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학교 공부에는 정해진 방향과 단계와 답이 있고 모르면 물어볼 수도 있다. 하지만 학교 밖 세상의 현실은 그렇지 않다. 답도 길도 없는 상황에서 막막함을 견딜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시험 점수에 대한 압박은 호기심과 내재적 학습 동기를 억제하는 부작용을 낳기도 한다. 21세기 지식 정보화 사회에서, 학교의 역할은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학생의 흥미를 자극하고 학생 스스로 공부하는 습관과 방법을 익히도록 돕는 쪽으로 개선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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