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같지 않은 보수

한국에서는 왜 이공계가 대접받지 못할까? 한국 IT 업계 근무 환경은 왜 그렇게 열악할까? 왜 한국 사회 전반에 갑을 문화가 팽배할까? 한국 스타트업은 왜 '대기업에 아이디어 빼앗기면 어쩌나' 그렇게도 걱정을 할까?

너무 복잡해서 답도 없어 보이는 이 모든 문제들을 꿰뚫는 근본 원인이 있다. 그것은 바로 대한민국 경제 체제가 정부 주도로 구축된 재벌 대기업 중심의 독과점 형태라는 것이다. 시장에서 독과점 지위에 있는 기업은 경쟁할 필요가 없고, 경쟁할 필요가 없으니 혁신할 필요도 없다. 이는 경제 원론 수준의 기초 상식.


나는 나의 정치 성향을 정확히 알지 못한다. 다만 아주 극단적으로 작은 정부를 선호하는 걸로 봐서 보수 우파에 가까운 듯. 보수와 진보 모두 목표는 같다. 좋은 세상 만들어 보자는 것이다. 다만 공통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추구하는 가치와 수단의 우선 순위가 다를 뿐. 보수와 진보의 명확한 정의를 알고 싶다면 사전을 찾아보길 권한다.

전 세계 보수주의자들이 보편적으로 추구하는 우선 가치는 자유 경쟁을 보장하는 시장 경제 정의, 개인의 자유와 안전, 탄탄한 국가 안보 주권 등이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현재 우리 나라에서 보수 우파라 자처하는 세력들 가운에 이러한 가치를 추구하는 자들을 찾아보기 어렵다. 오히려 이런 가치들을 해친다고 봐도 무방할 지경.


한국의 보수 세력들은 재벌 독과점을 옹호하고, 국민 안전을 위협하는 사건 사고에 대한 진상 규명을 회피하며, 개인 사생활을 무시로 사찰하고, 전시 작전권을 계속 다른 나라에 맡겨두기 원한다. 그러면서 그저 북한에 대한 앞뒤 없는 증오만 부추기고, 이러한 증오를 권력 유지에 활용하기도 한다. 이들이 조장한 지역 감정 역시 심각한 사회 문제.

물론 한국에만 대기업이 있는 것은 아니다. 미국에도 있다. 하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다 하는 재벌은 오직 한국에만 있다. 그래서 재벌을 영어로 번역하면 Chaebul. 그래서 우리 나라에서는 B2B 시장이 성숙하지 못한다. 기껏해야 계열사간 거래나 갑을 관계가 뚜렷한 하청 거래만 있을 뿐. (부조리도 많다.)

'보수주의자는 사전적으로 가족, 민족, 국가, 공동체 같은 가치를 수호하려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대한민국에서는 이승만 정권 수립 이후 이런 가치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기회주의자들에 의해) 모두 제거되었고, 결국 한국의 보수주의는 진짜 보수가 아닌 이상한 무언가가 되어버렸어요.' - 김동춘

보수가 아닌데 보수인 척 하는 자들을 보수라 불러서는 안된다. 수구 기득권 또는 사이비 보수 같은 다른 이름을 붙여야 한다. 어쩌면 이것이 바로 우리 나라 정치 발전을 위한 가장 시급하고 근본적인 문제! 사람은 생각의 도구로 언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핵심 개념과 용어의 올바른 정의와 사용은 매우 중요하다. 잘못된 용어를 사용하면 사고도 왜곡된다.

대한민국은 지금껏 무보수 정치를 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보수의 기치 아래 모인 자들은 많았지만 보수의 가치를 세운 자들은 없었다. 보편적 보수의 가치 수호를 위해 진보 정당을 지지할 수 밖에 없는 모순적인 상황. 언제쯤 진짜 보수와 진보가 합리적으로 충돌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까? 언제쯤 이 나라에 정의가 바로 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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