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선택과 결정의 연속이라는 점에서, 실생활에 매우 유용한 수학 개념 중 하나가 기대값. 긍정 부정 기대 효과에 각 경우의 확률을 곱해 더한 값이 양수면 추진하고 음수면 보류하면 된다.
그런데 문제집과 실전 인생의 결정적 차이가 있다. 확률을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기대 효과야 원래 상상 유추의 영역이라지만 미래 일의 확률은 알 수 없다. 짐작할 수는 있지만 결국은 해봐야 안다.
그렇다면 부정적 기대 효과가 너무 크거나 가늠 조차 안된다면 멈춰야 한다. 반대로 성공의 파급 효과가 크고, 실패 비용은 감당 가능할 만큼 충분히 작다면, 이는 시도해 볼만한 일이다.
그런데 사람은 실패는 고려하지 않고 오직 성공만 좆아 무리한 시도를 하거나, 어차피 해보기 전에는 알 수 없는 가능성을 따지다 쓸데없이 복잡한 고민에 취해 기회를 놓치곤 한다.
중대사를 시작함에 있어서는 명분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진학 이직 창업 결혼 출마 같은 인생의 중대사도 마찬가지. 손자병법에도 국가적 중대사인 전쟁을 개시하려면 반드시 명분이 필요하다고 했다. 명분을 고리타분한 허례허식 쯤으로 여기는 것은 꽤나 크고 흔한 오해.
명분의 사전적 의미는 일을 하기 위해 겉으로 제시하는 이유나 구실. 바꿔 말하면 누가 봐도 수긍이 되는 합당한 사유. 명분히 타당하면 일이 수월하다. 온 우주가 도와준다는 말 처럼. 반대로 명분은 빈약하나 그저 개인적 욕심만으로 섣불리 벌인 일에는 십중팔구 무리수가 따른다.
명분은 요즘 말로 스토리텔링이라 바꿔 말해도 무방하다. 그런 점에서 '어떤' 일을 하느냐 못지 않게 '누가' 하느냐가 중요하다. 매사 시작이 반이다. 누가 언제 무엇을 왜 어떻게 하느냐를 누가 들어도 납득이 되도록 설명할 수 있다면, 충분한 명분을 갖춘 바람직한 출발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그럴싸하지만 실은 허울 뿐인 거짓 명분을 진짜 충분한 명분으로 착각하면 곤란하다. 오히려 똑똑한 수록 이런 실수를 범하는 경우가 많다. 세상에서 속이기 가장 쉬운 존재는 바로 자기 자신이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가 많기에 명분에 대한 오해도 큰 것이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