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정도 나이 학벌 지위 따위를 가진 사람이면 적어도 이 정도는 알겠지, 이런 생각 흔히 할 수 있는데, 살아보니 그렇지 않다. 나와 상대가 당연하게 여기는 범위가 다른 경우야 당연히 많고, 특정 영역에서의 상식적 사고나 기본적 성품이 사실상 결여된 사람도 의외로 많다.
전에는 이런 사람 만날 때면 지적하고 가르쳐줬다. 아니 충분히 아실만한 분께서 도대체 이런 기본적인 것을 모르느냐는 선의와 답답함 때문에. 그런데 이제 보니 가르쳐준다고 될 것이 아니었다.
비유하자면 지난날 내 오지랖은 호환 슬롯 없는 메인 보드에 CPU나 그래픽 카드 꼽으려고 시도한 것과 같다. 그 사람의 내면에는 애초에 해당 역량을 탑재하고 처리할 영역 자체가 없는데.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나에게도 이러한 부분이 있을 수 있다.)
따라서 이런 경우를 만나면 당황하지 말고 그냥 그 사람의 현재 상태를 있는 그대로 인지하고 받아들이면 된다. 앞으로도 영원히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단정할 필요는 없지만, 앞으로도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합리적 추정은 가능하며, 적어도 당장은 절대 바뀌지 않을 것임은 거의 확실하다.
사람이 바뀌지 않는 것을 답답해하거나 비난할 필요도 없다. 오히려 이러한 태도야 말로 인간에 대한 스스로의 몰이해를 드러내는 것일 뿐이다. 각 사람의 선택지는 이론적으로 무한하지만, 사실상 블록체인 같은 비가역적 운명의 굴레에 메여있는 가련한 존재. 이들을 바꾸려 들지 말고 타산지석 삼으시라.
신신애 노래 가사처럼 잘난 사람은 자기 확신이 지나쳐서 못나면 아둔하고 미련해서 쓸데없는 고집을 부린다. 데일 카네기 말마따나 사람들 대부분은 당장 눈 앞의 것 밖에 못 보는 근시안. 자기 밖에 모르는 사랑 따위 택도 없는 자존심과 허영심 덩어리.
이렇듯 모순 덩어리인 사람과 그들이 만드는 어지럽고 추악한 깨진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한다. 그저 체념하라는 뜻이 아니라, 어느 지혜로운 기도 문구 처럼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분별하라는 뜻이다.
'뜻밖에 아주 야비하고 어이없는 일을 당하더라도 그것 때문에 괴로워하거나 짜증내지 마라. 그냥 지식이 하나 늘었다고 생각하라. 인간에 대해 알아가던 중에 고려할 요소가 새로 하나 늘어난 것뿐이다. 우연히 아주 특이한 광물 표본을 손에 넣은 지질학자 같은 태도를 취하라.' -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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