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께서는 왕년에 충무로 의상실 디자이너였다. 다시 말해 자수성가한 사업가였다. 그런 어머니 연세도 일흔을 훌쩍 넘겼고, 당연하게도 나이가 들 수록 여러모로 노쇠해 지셨는데, 가장 눈에 띄는 변화 중 하나는 본인 발언이나 결정에 대한 지적을 받는 상황에 예민하게 반발한다는 것이다.
내가 어린 시절 그러니까 어머니 젊은 시절에는 이러지 않으셨다. 철 모르는 어린 내가 하는 지적조차 귀담아 들으시던 기억이 생생하다. 하지만 더 이상 이러한 어머니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렇게 하기에는 기력도 자존감도 많이 떨어진 상태. 어쩔 수 없고 그럴 수 있다. 이해해 드려야 마땅하다.
그런데 살아보니 젊은 사람들 조차 나이드신 어머니처럼 타인의 지적을 조금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렇다고 자성의 미덕이 있냐면 당연히 그렇지 않다. 심지어 스타트업 한다는 사람 중에도 이런 경우가 허다하다. 이미 늙어버린 멘탈로 혁신가를 자처하는 것이다.
대중 매체에는 결정을 번복하지 않는 카리스마 넘치는 경영자가 종종 등장하는데, 현실에서 이런 리더는 재앙을 낳을 가능성이 높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한다. 따라서 틀린 결정은 재빨리 번복하는 자가 정말 탁월한 경영자이다. (약속을 뒤집어 신뢰를 저버리라는 뜻은 아니다.)
경영자는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스스로 머리가 되어 직원을 수족으로 부리는 자와, 엔드류 카네기 묘비명처럼 자신보다 뛰어난 사람을 모아 위대한 일을 하도록 판을 짜는 자. 전자가 딱히 나쁠 것은 없지만, 후자가 되려면 무엇보다 스스로 준걸을 담을 큰 그릇이어야 한다.
지피지기하고 자기에게 필요한 바를 간절히 찾는데다 운까지 따르는 자만이 대업을 이룬다. 그런데 지피지기도 어렵고, 자존심보다 큰 간절함을 갖는 경우도 드물고, 운도 항상 따르는 것이 아니니, 때를 만나 인재를 중용하여 세상을 바꿀 가능성은 참으로 희박한 것이다.
흔히 자기를 가장 잘 아는 자는 바로 자신이라 말하지만, 자기 요구 사항을 정확이 아는 클라이언트는 없다는 격언처럼 자기를 아는 이는 드물다. 편견과 자존심 같은 잡음 때문에 스스로를 똑바로 직시하지 못하고, 지금 나를 안다 한들 세상도 나 자신도 끊임없이 변한다.
성공에서 운이 차지하는 비중은 너무 크다. 성과가 클 수록 사람이 기여한 비중은 작고 운이 기여한 비중은 크다. 실제로 위대한 업적을 이룬 위인 대부분이 운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오직 자기 노력으로 성공을 이뤘다고 믿는 자는 소인배거나 딱 그 만큼의 경험만 한 것이다.
아무리 사람이 모자라도 운이 정말 미친듯이 좋으면 잘 될 수도 있다.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그렇다. 하지만 어느 한 사람에게 운이 무한정 집중되는 경우는 없으므로 현실적으로는 어떤 사람이 하는 결정과 태도를 보면 그 사람의 성공 가능성 또는 한계를 가늠할 수 있다.
현실적으로는 운이 따르더라도 결국 실책으로 날려먹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런 점에서 운칠기삼 고사성어는 참으로 적절하다. 칠의 운이 와도 내가 삼은 해야 온전한 십을 채울 수가 있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십의 업적을 이뤘어도 실제 내가 기여한 바는 끽해야 삼 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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