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 주장과 고집의 차이

사람들은 단지 자기 주장이 강한 것과 고집 부리는 것을 혼동하곤 한다. 진짜 고집은 이미 정한 답을 바꿀 의사가 없는 것이다. 주장이 강하지만 유연하게 주장을 바꿀 수 있다면 고집이 쎄다기 보다는 집요하거나 솔직한 것이다.

제 아무리 논리적이라도 실은 주장을 바꿀 의사가 조금도 없다면 이는 고집. 합리가 아닌 합리화. 어눌하고 논리적이지 않아도 얼마든지 고집을 부릴 수 있다. 사실 팔랑귀나 무골호인 아니면 고집 없는 사람은 드물다.

잘난 고집은 주로 과거 업적이 근거. 자기는 이렇게나 대단한 사람이니 이번에도 자기가 맞다는 식인데, 그렇다는 보장은 없다. 못난 고집은 무논리 똥고집. 고집대로 안되면 삐지거나 화내거나 울거나 이런 식.

주장이 강하지만 고집은 부리지 않는 사람은 화자(Who)보다 의도(Why)를 근거로 삼는다. 기존 근거보다 나은 것이 있다면 기꺼이 수용하며, 논의 과정에서 기존 주장이 완전히 새로운 것으로 변하기도 한다.

주장이 약한 사람들이 자기 고집을 적당히 양보하고 또 나름 관철하는 가장 흔한 방법은 타협. 이번엔 내가 네 말 들어줄테니 다음엔 네가 내 말 들어줘라 이런 식. 소위 말하는 정치적인 상황을 매듭짖기 적합한 방식.

주장이 약하거나 고집이 쎈 사람은 상대가 주장이 강하면 일단 고집쟁이로 간주한다. 주장이 약하면 강한 태도가 부담스럽고, 고집쟁이는 자기 고집이 안 먹히니 답답하니까. 말하자면 거울에 비친 자기 고집을 본 것이다. 

한국 사회는 질문이 꼬리를 무는 상황을 꺼린다. 집요하게 묻고 따지면 까칠하고 피곤한 사람. ‘까라면 까!’, '적당히 좀 하지?’ 같은 소셜 프레셔가 가해진다. 한국 사람은 빠릿빠릿한만큼 합리적이지 않다.

합리란 세계 공통의 동일 프로토콜. 다만 수용과 적용의 정도는 사회마다 차이가 있다. 합리적인 사회는 질문을 용인한다. 단지 한 두번 허용하는 것이 아니라, 이어지는 후속 질문과 토론 상황을 흔쾌히 받아들인다.

그런데 질문을 용인하지 않는 문화가 방역에서 빛을 발하더군. 정부가 마스크 착용을 지시하자, 유럽이 개인의 자유과 권리를 토론하느라 세월 보내는 동안 한국은 일사분란 척척. 역시 사람은 바뀌지 않고 인생은 운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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