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된 꿈만 쫓던 시절, 철없던 나는 사람을 바꾸려고 집요하게 노력했다. 연금술 같은 헛된 노력은 언제나 실패로 귀결되었지만, 그러한 노력들 덕분에 사람이라는 존재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 그래서인지 사람을 금방 꿰뚫어 볼 수 있게 되었다.
사람들은 자신의 사고와 행동이 일정한 패턴에 속한다는 사실을 좋아하지 않는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남들과는 다른 특별한 존재로 여기고 싶어하니까. 그런데 말했듯이 사람이라는 종의 사고와 행동에는 일정한 패턴이 있다. 이러한 패턴들 체계적으로 연구한 산물이 바로 심리학 아니겠는가.
디테일로 들어가면 사람마다 상황마다 모두 다르므로 선입견은 주의해야 하겠지만, 대략적으로는 몇 가지 대표적인 패턴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분야를 막론하고 경험이 쌓여 빠른 판단을 위한 패턴이 축적되는 것을 우리는 전문성이라 말한다. 물론 섣부른 오판은 언제나 경계해야 하겠지만, 이러한 패턴 자체가 없다면, 똥인지 된장인지 반드시 찍어 먹어봐야 아는 (나이와 연차를 똥구녕으로 쳐드신) 애송이.
최근 펜드로잉 배우면서 종종 사람들 얼굴을 유심히 살피는 버릇이 생겼다. 그리고 느낀 점이 있는데 사람들 생김에도 일정한 패턴이 있다는 것이다. 잘나면 잘난대로 못나면 못난대로 몇 가지 패턴이 있다. 물론 디테일은 다르지만 대략적인 패턴은 서로 공유한다. 그도 그럴 것이 외모 형질도 결국 유전과 자연 선택을 통해 공통의 조상들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니까. 사람의 생김도 생각도 결국 몇 가지 대표적인 패턴이 있기 마련.
실패하는 사람들의 사고 패턴은 비교적 쉽게 읽힌다. 피터 틸 말마따나 성공 유형은 각기 다르지만 실패 유형은 엇비슷하니까. 성공 방정식은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면 성공의 조건 중 하나가 바로 차별화이기 때문이다. 다른 이의 성공 방식을 따르는 순간 성공이 복사되는 것이 아니라 아류가 되고 만다. 비록 성공 방정식은 없지만, 모두가 범하는 비슷한 유형의 실패들을 답습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다보면, 성공에 보다 가까워질 수는 있다.
최근에 모신 대표는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내 이력서를 보면 지금껏 계속 조직에 적응하지 못하고 이탈만 해왔다고. 결과만 놓고 보면 그렇게 해석될 수도 있다.
스타트업 접고 다시 월급쟁이 되어 만난 회사 대표들은 본인이 차렸거나 물려받은 회사를 급격히 또는 서서히 말아먹고 있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내 눈엔 그게 뻔히 보였다.
원래 옆에서 훈수 두는 것이 쉽기도 하거니와, 실패 예측은 비교적 쉽다. 말했듯이 성공하는 이유는 제각기 달라도 실패 원인은 대동소이하니까. 세세한 상황은 각기 다르겠지만, 경험과 식견이 있으면 뻔히 보이는 일정한 패턴이 있다.
그래서 '그러시면 안됩니다' 같은 조언을 하면, 결국은 '내꺼 내 꼴리는대로 한다는데 니가 뭔데 지랄이야' 같은 반응이 돌아온다. '와 ㅆㅂ 너 아니었음 좆될 뻔했네 너무 고맙다' 이런 분은 없었다. 사람은 보통 정말 잘 되는 것 보다 일단 내 맘대로 하는 것을, 다시 말해 미래의 성공보다 당장의 자존심을 훨씬 중요하게 여긴다.
원래 창업가나 대표들은 뭘 하지 말라는 조언보다 뭔가 하자는 제안을 좋아한다는 조언도 들었다. 이 또한 틀린 말은 아니다만, 스티브 잡스 말마따나 하지 않아야 될 일들을 비워나가다 보면 정말 해야 할 일이 보인다.
사장이 자기 회사 말아 먹던 삶아 먹던 너는 네 할 일이나 하면서 버티면 되는 것 아니냐는 분도 많은데, 방랑 군주 신세인 나는 좋던 싫던 회사와 운명을 같이 하는 책사 역할을 하게 된다.
다시 월급쟁이 될 무렵, 지인께서 내게 이런 조언을 해주셨다. 기왕이면 간접적으로나마 성공 경험 할 수 있는 직장을 고르라고. 그래서 지금껏 월급쟁이로서 다닐 마지막 회사를 찾았다.
하지만 월급쟁이로 합류하여 성공 경험을 할 만한 회사를 만나는 것은 내가 다시 창업을 하여 성공하는 것 만큼이나 어려웠다. 조언해 준 지인은 그럴 수록 더 신중하게 결정을 하라는데, 신중하게 고르고 자시고 할 만큼 기회가 많지도 않다. 그저 운명처럼 찾아온 기회에 나름의 최선을 다할 따름.
이제 남의 회사에서 성공 경험을 하겠다는 목표는 버리기로 했다. 날개가 아물고 강풍이 불 때 까지 시간을 벌며 버티면 족하다. 물론 그러다 운 좋게 성공 경험을 한다면 너무 좋지만, 말했듯이 이건 내가 바라고 노린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차라리 마음 비우고 어떤 상황에라도 감사하는 것이 지금 내게 주어진 과제가 아닐까 싶다. 누군가 뻔히 보이는 실패를 범할 때, 물론 그러면 안된다고 말은 해줘야 하겠지만, 말을 듣지 않는다고 끝까지 쫒아가서 비난할 것이 아니라, 사실상 운명의 굴레에 잡혀 사는 인간이란 존재에 따뜻한 연민의 미소를 띄울 수 있는 보다 큰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