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 혁명은 철저히 실패했고 이제 자본주의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 사회주의가 무엇을 놓쳤나? 물질 만능 자본주의는 어디로 가는가? 자본주의는 계속될 것인가? 아니면 자본주의 다음 세상을 맞이할 것인가? 나는 인류가 자본주의를 넘어 가상현실 (혹은 기술주의) 시대로 나아갈 것으로 본다. 아니 그래야만 한다고 본다.
경제활동은 가치를 만들어내는 일이다. 그렇다면 가치란 무엇인가? 사람의 욕구를 채우는 것이다. (지나친 욕심을 체우는건 가치가 아닌 낭비라고 봐야겠지만.) 소비 욕구를 충족하려면 생산을 해야 한다. 생산 활동에는 자원의 채취(농업, 어업, 광업)와 가공(공업 생산) 같은 유형의 생산 활동과 금융, 교환, 유통, 서비스 등의 무형의 생산 활동이 있고, 기술 혁신은 모든 생산 활동의 효율성을 높여준다. 효율성이 높아지면 적은 자원으로 많이 생산할 수 있으므로 상품 가격은 내려간다.
경제 활동은 가치를 만들어내는 것이며, 가치란 인간의 욕구를 채우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욕구는 어디까지인가? 세계 인구가 100명이라고 해 보자. 그리고 모든 사람의 욕망은 그저 배부르고 등따시며 배부를 수 있는 정도이며 이를 위해 한 사람당 1년에 10 만큼의 재화가 필요하다고 하자. 그런데 세계의 연간 총 생산량이 500이라면? 모든 생산품을 똑같이 나누더라도 한 사람에게 5밖에 돌아가지 않는다. 따라서 사회주의 혁명은 실패한다. 사회주의 국가들이 가난을 면치 못한 점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 그래서 슘페터는 사회주의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본주의 생산능력이 고도화 되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 기술이 발전해서 세계의 연간 생산 능력이 10,000이 된다면 사회주의 혁명은 성공할 수 있을까? 아마 어려울 것이다. 사실 지금도 인류의 생산성과 효율성은 모든 인류를 배불리 먹이기에 충분하다. 근데 지금도 누군가는 가난과 고통에 시달린다. 20%의 인류가 80%의 자원을 소비한다. 왜냐면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기 때문이다. 이는 정부 관료 또한 마찬가지. 사회주의 관료들은 우선 자기 몫으로 먼저 한 절반쯤 뚝 떼어 놓을 것이다. 그리고 나머지를 국민들에게 나눠줄 것이다. 마르크스가 꿈꾼 사회주의가 슬기로운 정부의 철인정치라면 현실의 사회주의는 썩은 권력의 독재정치가 되고 마는 것이다.
동물도 인간처럼 욕구가 있다. 하지만 동물의 욕구는 끝이 있다. 그저 배부르고 등따시면 그만. 사나운 맹수도 먹이가 풍족하면 더 이상 사냥하지 않는다. 인간의 욕구도 끝이 있다면 경제는 어느 정도 까지만 성장하면 된다. 남는 재화는 없는 이에게 나눠주면 된다. 일도 좀 쉬엄쉬엄 해도 된다. 하지만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기 때문에 경제도 끊임없이 성장하고 확장되야 한다. Matrix 대사처럼 인간은 마치 바이러스 같다. 다 없어질 때까지 소비하고 어느 한 쪽이 죽을 때까지 경쟁한다. 욕구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소비하고 경쟁하는 것을 넘어 소비를 위해 소비하고 경쟁을 위해 경쟁하며 헛된 과시에 집착한다.
자본주의는 이런 욕구를 부추긴다. 가져도 더 가지고 싶게 만든다. 욕구와 관습을 한 데 묶어 교묘히 자극하면 실제로는 아무 가치가 없는 것 조차도 필요하게 만들 수 있다. 우리는 정보의 바다면서 시공을 초월하는 네트워크이자 커뮤니티인 인터넷을 옆에 두고 있다. 이제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지식과 정보를 거의 무료로 공급 받을 수 있다. 또한 전 세계에 흩어져 사는 학습 동료들과 토론 할 수도 있다. 그것도 실시간으로! 근데 인류는 아직도 그저 종이 조각일 뿐인 졸업장을 받기 위해 아직도 학교에 돈과 시간을 바친다. 왜냐면 이 사회에서 그 종이 조각이 가치로 인정받기 때문이다. 이는 학교가 사람들의 관습에 의존하여 배움은 오직 학교를 통해서만 가능하며 졸업장이 없으면 지식과 교양도 없는 사람이라며 마케팅하니까.
인류의 욕구는 끝이 없기에 경제는 끊임없이 성장해야만 한다. 경제 성장이란 더 많이 생산하고 더 많이 소비한다는 뜻이다. 그러면 소비란 무엇인가? 말 그래도 써서 버린다는 뜻이다. 그럼 모두 다 써 버려서 더 이상 쓸 수 있는 것이 없어진다면? 지구는 불모의 땅이 되고 말 것이다. 하지만 지구를 불모의 땅으로 만들면 만들었지 인류가 (정확히 말하면 인류의 지도자들이) 욕망의 브레이크를 밟는 일은 아마 없을 것이다. 기껏해야 인간의 욕망과 소비(≒오염)에 세금을 메기는 정도. 근데 그나마도 제대로 해낸 정권은 역사상 그리 많지 않다. 오히려 괜히 경제 원칙과 세법만 더럽게 복잡하게 만들어놨다.
부자들에게 세금 걷어 해결해야 할 불경기를, 어이없게도 돈을 무한정 찍어내는 꼼수로 땜방했다. 원래 화폐는 금이나 쌀처럼 진짜로 가치 있는 물건에 대한 교환 수단 즉 껍데기일 뿐. 따라서 화폐는 보유한 실물의 양을 기초로 발행하는 것이 당연. 이러한 대표적인 예가 바로 금본위제. 그런데 베트남전을 겪으며 급전이 필요해진 미국 정부는 금본위제 원칙을 깨고 돈을 마구 찍어냈다. 왜? 기득권층이 전쟁은 하고 싶은데 지들 돈 쓰기는 싫으니까! 여기서부터 경제에 거품이 끼고, 단순했던 경제 원리는 꼬이고 꼬여서 안드로메다로 치닿는다. 물가는 시시 때때로 요동치고 국제 환율은 뒤틀린다. 위기를 느낀 각 나라들은 2차대전 이후 다시 화폐를 금본위제로 돌려놓지만 미국의 닉슨 쇼크 이후 금본위제는 또다시 무너지고 만다. 이제 경제학 공식은 물리학보다 복잡한 지경에 이르렀고, 유명한 경제학자들 조차 한치의 앞 날도 예상할 수 없게 되었다. 진짜 가치는 점점 더 거품에 희석되고 그래서 (서민들은) 예전보다 더 버는 것 같지만 지금도 끊임없이 목마르다.
그렇다면 인류는 이대로 쓰레기장을 향해 나아갈 수 밖에 없는가? 끊임없이 더 가지고 싶은 욕망을 포기할 수 없다면 더 작은 자원을 투입해서 보다 많은 것을 생산해 내는 길 밖에는 없다. 결국 인류가 욕구를 멈출 수 없다면 남은 방법은 기술 진보로 생산의 효율성을 극대화 시키는 길 밖에 없다. 자원은 얼마 남지 않았는데도 계속 소비하고 싶다면 고도의 기술로 보다 적은 자원으로 보다 많은 상품을 만드는 수 밖에 없다. 끝없이 더 가지고 싶다면야 끝없이 더 싸게 만드는 수 밖에. 인류는 지금껏 기술 진보로 상품의 가격을 낮춰왔다. 하드 500 메가 컴퓨터가 수 백 만원을 호가하며 공대생의 로망이던 시절이 불과 얼마 전이다. 21세기 기술 발전 속도는 마르크스가 자본론을 발표했을 때와는 비교 할 수도 없다. 과학 기술의 발전 속도는 이제 말 그대로 사람의 상상을 초월한다. 이젠 공상이 과학인 시대가 되었다. 그럼 효율성이 극에 달한 경제시스템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나는 기술이 긍정적으로 진보하여 생산 효율이 극에 달한 모습은 바로 Matrix 같은 궁극의 가상현실이라고 본다. 궁극의 가상현실은 현실을 너무도 닮아 현실과 거의 구분이 되지 않는다. 영화 Matrix는 궁극의 인공지능과 가상현실이 인간을 지배하는 암울한 상황이지만, 인간이 궁극의 가상현실을 마음데로 다룰 수만 있다면, 가상현실은 유토피아가 된다. 우리는 가상현실 속에서 우리가 상상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그것도 공짜로! 마치 네오와 모피어스처럼 우리는 가상현실 속에서 공짜로 비싼 옷을 입고 고급 레스토랑을 갈 수 있다. 그 속에선 아무리 먹고 마셔도 돈이 들지도 쓰레기가 생기지도 않는다. 인류는 모든 것이 공짜이며 낭비가 완벽하게 제거된 가상현실에서 가상재화를 소비하며 대부분의 욕구를 해소한다. 따라서 인류는 자원의 제약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게 된다. 현실에서는 입고 먹고 자는 정도만 하고. 생명공학과 나노과학의 발달로 식료품 같은 현실 재화의 가격도 거의 공짜가 될 것이다.
자본주의 경제학의 기본 전제는 바로 자원의 희소성이다. 희소한 자원을 인간의 이기심이 만든 보이지 않는 손으로 나누는 것이 바로 자본주의 경제. 하지만 자원의 희소성이 없어진다면? 더 이상 자본주의도 필요 없다! 사회주의처럼 자본주의를 뒤 엎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가 성장에 성장을 거듭하여 더 이상 성장할 여지가 없게 되는 것이다. 뉴스에서는 경제 성장률이 떨어지면 마치 큰일이 난 것처럼 소란이다. 더 이상 소비와 생산이 늘지 않고 돈이 돌지 않는 상태를 정체상태라 한다. 뉴스 앵커들이 불황을 걱정하는 것처럼 많은 고전학파 경제학자들이 정체상태를 걱정했다. 하지만 존 스튜어트 밀은 오히려 사람들이 더 이상 돈 벌이에 연연하지 않는 정체상태야 말로 인류 최상의 상태라고 말했다. 나는 불황과는 다른 이러한 이상적인 정체상태가 바로 궁극의 가상현실이라고 본다. 인간의 끝없는 욕망을 채우려는 자본주의도, 다 같이 잘 먹고 잘 살자는 사회주의 이상도 모두 실현할 수 있는 세계는 결국 궁극의 가상현실 뿐이다.
물론 가상현실이 유토피아를 보장하는 것 만은 아니다. 궁극의 가상현실이 아닌 현실과 결합된 과도기적 가상현실은 오히려 더 많은 자원의 소비와 낭비를 가져올 수도 있다. 그리고 가상현실은 결국 인간의 뇌를 이용한 컴퓨팅 기술과 연관된다. 인간의 뇌를 이용하는 과정에서 영화 게이머 같이 사람이 사람을 조종하는 끔찍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또한 영화 Matrix 처럼 인공 지능을 가진 기계가 인간을 지배하게 될 수도 있다. 어쩌면 미래 가상현실 시대를 위하여, 아이작 아시모프의 로봇의 3 원칙에 사람과 기계는 사람과 생명체의 정신을 직접 조종할 수 없다는 조항을 추가해야 할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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