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와 명철을 권합니다. 거만한 자를 책망하는 것은 무의미합니다. 도리어 그는 화를 내며 자신이 음부 깊은 곳에 있음을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자를 책망하면, 그는 더욱 지혜로워집니다. 지혜로운 자는 지혜로 말미암아 복을 받습니다.
☞ 생명을 주는 지혜의 초대 (잠언 9:1 - 9:6)
1 지혜가 그 집을 짓고 일곱 기둥을 다듬고 2 짐승을 잡으며 포도주를 혼합하여 상을 갖추고 3 그 여종을 보내어 성중 높은 곳에서 불러 이르기를 4 무릇 어리석은 자는 이리로 돌이키라 또 지혜 없는 자에게 이르기를 5 너는 와서 내 식물을 먹으며 내 혼합한 포도주를 마시고 6 어리석음을 버리고 생명을 얻으라 명철의 길을 행하라 하느니라
☞ 사망에 이르는 어리석음의 초대 (잠언 9:7 - 9:18)
7 거만한 자를 징계하는 자는 도리어 능욕을 받고 악인을 책망하는 자는 도리어 흠을 잡히느니라 8 거만한 자를 책망하지 말라 그가 너를 미워할까 두려우니라 지혜 있는 자를 책망하라 그가 너를 사랑하리라 9 지혜 있는 자에게 교훈을 더하라 그가 더욱 지혜로와질 것이요 의로운 사람을 가르치라 그의 학식이 더하리라 10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 11 나 지혜로 말미암아 네 날이 많아질 것이요 네 생명의 해가 더하리라 12 네가 만일 지혜로우면 그 지혜가 네게 유익할 것이나 네가 만일 거만하면 너 홀로 해를 당하리라 13 미련한 계집이 떠들며 어리석어서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14 자기 집 문에 앉으며 성읍 높은 곳에 있는 자리에 앉아서 15 자기 길을 바로 가는 행객을 불러 이르되 16 무릇 어리석은 자는 이리로 돌이키라 또 지혜 없는 자에게 이르기를 17 도적질한 물이 달고 몰래 먹는 떡이 맛이 있다 하는도다 18 오직 그 어리석은 자는 죽은 자가 그의 곳에 있는 것과 그의 객들이 음부 깊은 곳에 있는 것을 알지 못하느니라

'아니 뭐 저런 병신같은 새끼가 다 있냐? 아니 저 새끼는 생각하는게 왜 저렇게 좇같냐? 저게 인간이야?' 이런 생각이 들게 하는 사람이 있다. 너무 병신같아서 말이 안 통하는 사람과는 간혹 부딫히는 경우가 있다. 그것도 어쩔 수 없이 그 사람과 오랜시간 같이 있어야 한다면. 그리고 그렇게 부딫히고 나면 겉잡을 수 없이 짜증난다.
말 안 통하는 사람과의 논쟁은 그저 의미 없는 말싸움일 뿐. 둘 중 하나의 주장이 옳은 경우라도 결론은 반드시 옳은 쪽으로 나지는 않는다. 목소리 큰 놈이 이긴다는 속담처럼. 상대방이 내 말을 조용히 듣고 있다고 해서 정말 내 의도가 전달되었다고 생각한다면 크나큰 오산. 말이 통한다는 것 만으로도 그 사람을 그 누구보다 소중히 여겨야 할 충분한 이유가 된다.
나를 항상 감찰하시는 주님을 생각해본다. 완전무결한 주님께서 보시기에, 나는 얼마나 병신같고 좇같을까.. 하지만 이런 병신같은 모습도 보혈로써 감싸고 용서하시는.. 어쩔 수 없이.. 나보다 병신같고 좇같은 사람을 보면서 나를 바라보실 주님의 답답함을 조금이나마 느낀다. 그리고.. 미약하나마.. 주님의 이해심을 닮고자한다..
아무리 병신같아도 다 자기 주관은 있다. 아니.. 오히려 사람이 모자라기 때문에.. 자기가 잘난줄 알고.. 남의 말 절대 안듣고.. 절대 안변한다. 특히나 자기 단점 꼬집는 말은 귓 등으로도 안듣는다. 누구나 지적 받으면 기분나쁘다. 아무리 성인 군자라도 지적 받는 그 순간만은 기분이 나쁠 것이다. 그릇이 작고 어리석은 자는 그렇게 기분 나쁘고 끝. 하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그 지적을 마음 깊이 되새긴다. 그래서 지혜는 양극화된다. 지혜로운 사람은 더 지혜로워지고 어리석은 사람은 더 어리석어진다.
지혜로운 사람은 그릇이 커서 남의 충고가 마음에 채워진다. 하지만 어리석은 자의 그릇은 작아서 충고가 들어갈 틈도 없이 밖으로 튀어버리고 만다. 그래서 아무리 가르쳐줘봐야 안 변한다. 그래서 과묵이 가치있다. 어차피 내가 몇 마디 말로 변하게 할 수 없는 사람이라면 그저 입 다물고 부딫이지 않는 것이 좋다. 그저 무시하고 피할 수만 있다면.
많은 사람들이 개인주의를 나쁘다고 생각하지고, 마치 반기독교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조차 간혹 있지만, 나는 스스로 개인주의자라 말한다.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는 엄연히 다르다. 개인주의의 반대말은 이타주의가 아니라 전체주의. 젼체주의도 충분히 이기적일 수 있다. 집단이기주의, 왕따 이런 말들이 증명하잖아. 개인주의가 이기적인게 아니라 이기적인게 이기적인거다.
인간 관계는 분명히 한계가 있다. 어떤 문제에 대해서는 다른 이의 위로도 받을 수 있겠지만 자기 근본의 문제는 결국 혼자 지고 가는 것이다. 개인주의는 인간관계를 완전히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관계의 어쩔 수 없는 한계를 객관적으로 자각하는 것이다. 이러한 인간 관계의 한계를 알지 못하고 다른 사람에게 너무 많이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다.
난 솔직히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사람을 좋아한다는 건 그만큼 지금까지 사람에 대한 고민 없이 살았다는 증거가 아닐까. 사람 때문에 괴로워 보지 않았던 거다. 사람의 어리석음과 마주하지 않았던 거다. 행여 사람 때문에 고민해 봤던들 적당히 서로 양보하고 맞출 수 있는 사람만 만난거다. 그래도 나름대로 자기랑 가치관이 맞고 그릇이 비슷한 사람들만 만나며 살아온 거다.
차라리 남이면 그냥 안보면 그만이고 참으면 그만. 근데 도저히 안 보고는 살기 어려운 아주 가까운 사람이 남보다 더 속 썩힌다. 그런 사람 하나 곁에 두고 살아야 하는게 진짜 괴롭고 짜증난다. 그래서 가족이나 친구가 틀어지면 원수도 그런 원수가 없다. 뭐 사실 틀어진다는 표현도 좀 안 맞는다. 그 사람에 대한 몰랐던 모습을 알게 되었다는 표현이 더 맞겠지.
단지 인간의 탈을 쓴 사람이라고 다 똑 같은 사람이 아니다. 지혜로운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의 차이는 너무나도 크다. 지혜로운 사람은 더욱 지혜의 말과 사람을 구하면서 더 지혜로워지고, 어리석은 사람은 어리석은 아첨과 친구들만 만나면서 더 어리석어진다. 돈이 돈을 버는 것 처럼 지혜가 지혜를 벌고 어리석음이 어리석음을 번다. 또한 어리석음이나 속물 근성이 오랜 시간 동안 자기 합리화를 통해 뿌리 깊이 내재화 되면 극단의 이기심과 잔인함을 낳는다. 양심에 조차 한 점 찔림이 없는 그런 뻔뻔함. 잔인함 앞에 합리와 논리 따위는 전혀 통하지 않는다.
어리석은 사람에게는 아무리 지혜의 말을 해줘도 소 귀에 경읽기. 오히려 화를 낸다. 게다가 어리석은 사람이 한국에서 나이라도 좀 먹어봐라. 나이 헛먹은 주제에 자기가 뭐라도 되는(아는) 줄 안다. 자기가 노력해서 나이 먹었나 세월가서 나이 먹었지. 그 세월동안 헛살았으면 나이 많이 먹은건 오히려 부끄러운 건 줄 모르고. 나이 내세우는 사람 치고 훌륭한 사람 못봤다. 훌륭하긴 커녕 그 나이값 조차 못하는 사람이 태반. 이게 바로 나이 헛 먹은 것들도 어른 대접해주는 한국 유교 문화의 부작용.
사람은 아무리 큰 일을 당해도 왠만해선 자기 주어진 그릇을 깨지 못한다. 사람 하나 변한다는게 정말 불가능이라 할 만큼 어렵다. 그렇다고 변하지 않는 어리석은 사람을 곁에 두고 보는 것도 미칠 노릇이다. 그래서 100번해야 1번 성공할까 말까 하는 사람을 변화시키려는 노력을 하는 스승이 위대한 거다. 어리석은 사람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예수님의 사랑이 놀라운 거다.
예수님처럼 마더 테레사처럼 철저하게 남을 위해 살꺼 아니라면, 냉정해질 필요가 있다. 세상은 넓고 병신은 많기 때문. 병신은 잘해주면 오히려 나를 더 만만하게 본다. 어리석고 뻔뻔한 인간은 그저 쌩가는게 최고. 어쩌다 재수없이 엮이면 처음부터 선을 확실히 딱 긋고 그 선 만큼만 잘해주되, 선을 넘어오면 가차없이 밟아야 한다. 이게 결국 모두를 위한 길이다.
사람은 끼리끼리 모여 살아야 한다. 사람이 어울리려면 성향이 틀릴지언정 그릇이, (인)격이 맞아야 한다. 특히 가까운 관계일수록 더욱 그렇다. 행복한 결혼을 꿈꾸는 젊은이여 이 점을 명심할 지어다! 지혜로운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이 같이 살면 서로가 서로에게 짐이고 피해고 짜증이다.지혜로운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과 살아야 서로가 더욱 고귀해지고 행복하며, 어리석은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과 살아야 또 그 나름대로 형님 동생하며 즐거운 거다.
잘 보았습니다. ^^
답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