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많이 기운 오후 4시 즈음, 집 근처 전철역에서 집으로 걸으며 나는 오늘따라 왠지 아련하게 다가오는 초록 풍경을 느껴. 학창 시절에도 이 길을 많이 걸었지. 그 땐 대학이라는 절대 목표만을 꿈꾸며 걱정하며 살았어. 그 때도 여긴 늘 이렇게 아름다웠지만, 나 그 속에서 심호흡할 여유는 없었다. 그 때는 대학만 가면 이 초록도 더 편한 마음으로 즐길 수 있으리라 믿었는데..

당시 난 그토록 숭배했던 서울대에는 못 갔지만 그래도 연세에 들어갔고 이제 4학년. 난 스스로에게 물었어.
"정말로 그 때 보다 이 초록이 아름답니?"
나는 그렇다고 했어. 확실히 그 때 보단 주변을 돌아보고 즐길 여유가 있지. 그렇다고 대학에 들어왔기 때문에 여유가 생겼다는건 아니고, 대학 가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없어진 그것 만으로도 그 때보단 확실히 여유로운 것 같아.
1학년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이 초록이 더 아름다울 것 같다는 부질 없는 생각을 또 해봤어. 나는 다시 물었지.
"그럼 1학년 때는 이 초록이 정말 그렇게 아름다웠니?"
"봄의 캠퍼스와 그 곳을 거닐던 사람들도?"
아니.. 대학교 1학년, 나는 대입이라는 내 인생의 절대 목표를 이루고 나서, 댐 문이 열리면 쏟아지는 물처럼, 갑자기 밀려드는 욕망들 속에서 마치 밀물에 휩싸인 조가비처럼 정신없이 흔들렸어. 그 땐 아름다운 것을 보면 일단 주눅이 들거나 아니면 무턱대고 가지고 싶어했어. 그래서 아름다움을 순수하고 여유롭게 즐기지 못했지. 그땐 나는 어쩌면 고교시절보다 더 불안했는지도 몰라.. 나는 또 묻는다.
"그러면 왜 지금은 1학년 때 보다 이 초록이 더 아름답지?"
내가 점점 더 자아에 눈을 떠 가고 있기 때문이야. 그 때 보다 내 자신을 더 많이 알고 그래서 더 여유로워진거야. 그 여유가 초록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게 해 줘. 그래. 심리학자 에릭슨이 자아 발견은 이미 중, 고교 시절부터 시작해야 한다던데, 하지만 나에겐 입시라는 절대 목표 앞에서 자아발견은 철저하게 뒤로 미뤘지. 나 뿐 아니라 거의 모든 우리 나라 아이들이 그랬을꺼야. 그러다가 입시의 달성과 함께 뒤 미루어졌던 모든 과제들이 밀려들면서 나는 그토록 방황하고 불안했던거야.
왜 중, 고교시절 그 무궁무진한 감수성과 가능성의 나이에 우리 나라의 학생들은 주변의 풍경을 제대로 즐길 여유 조차 없을까? 일터에 나아가 남의 돈을 벌어야 하는 직장인이라면 모를까 왜 어린 학생들마저도 이런 끝도 없는 경쟁의식과 불안함을 느껴야 하지? 학생은 충분히 여유로워야 하고 또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사람들이야. 하지만 지금 우리의 교육 제도는 학생이 학생으로서 마땅히 누릴만한 여유마저 가로막고 있어. 교육제도가 우리 모두에게 가장 아름답고 아련한 기억이 될 수 있는 학생 시절을 청소년 시기를 망치고 있는 거야.
’학교와 공부는 다르다. 시험과 공부도 다르다.’ 오랜 방황 끝에 얻은 깨달음 때문에 나는 여유를 느껴. 내가 느끼는 여유를 나누고 싶어. 지금도 내가 걸었던 그 끔찍한 길을 가고 있을 이 나라의 수 많은 학생들을 구해주고 싶어. 다른 길을 보여주고 싶어. 이미 그들 마음속에 어렴풋이 꿈틀거리고 있을 의심과 딴 생각에 믿음을 주고 싶다. 그들에게 알리고 싶어. ‘학교 밖에서도 시험 밖에서도 공부는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오늘 초록 나무에 햇살이 비추어 초록 물결 조각이 빛난다. 2003 년 어느 초 여름에 씀.
P.S: 자연, 예술, 미남, 미녀.. 아름다움은 마음에 감동을 준다. 하지만 그것을 소유하려 할 때, 감동은 번뇌로 바뀐다.
P.S: 요즘엔 다시 초록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어리석은 학교에서 보낸 헛된 세월을 깨닫는다고 해서 그 세월을 돌이키거나 그 노력들을 보상받을 수 있는건 아니니까.. 나는 가까스로 내 날개를 찾았는데 내 날개는 너무 오랜 세월동안 구겨져서 펴지질 않는다. 그렇다고 다시 저 어리석은 굴 속으로 기어 들어가고 싶지도 않다.. 지금 나는 하늘도 땅도 아닌 중간계 이방인이 되어있다.. 밀려드는 후회가.. 날 슬프게 한다.. - 2009.12
P.S: 학창시절로 돌아가는 꿈은 대부분 악몽. 뭔가에 쫒기고 시달린다. 좋은 추억도 없지는 않지만 그 땐 정말 그렇게 살았다. 죽을둥 살둥 열심히. 근데 모두 헛수고였을 뿐이라 더욱 슬프다. 꽃다운 그 시절, 두고온게 너무 많다.. - 2010. 10
"정말로 그 때 보다 이 초록이 아름답니?"
나는 그렇다고 했어. 확실히 그 때 보단 주변을 돌아보고 즐길 여유가 있지. 그렇다고 대학에 들어왔기 때문에 여유가 생겼다는건 아니고, 대학 가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없어진 그것 만으로도 그 때보단 확실히 여유로운 것 같아.
1학년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이 초록이 더 아름다울 것 같다는 부질 없는 생각을 또 해봤어. 나는 다시 물었지.
"그럼 1학년 때는 이 초록이 정말 그렇게 아름다웠니?"
"봄의 캠퍼스와 그 곳을 거닐던 사람들도?"
아니.. 대학교 1학년, 나는 대입이라는 내 인생의 절대 목표를 이루고 나서, 댐 문이 열리면 쏟아지는 물처럼, 갑자기 밀려드는 욕망들 속에서 마치 밀물에 휩싸인 조가비처럼 정신없이 흔들렸어. 그 땐 아름다운 것을 보면 일단 주눅이 들거나 아니면 무턱대고 가지고 싶어했어. 그래서 아름다움을 순수하고 여유롭게 즐기지 못했지. 그땐 나는 어쩌면 고교시절보다 더 불안했는지도 몰라.. 나는 또 묻는다.
"그러면 왜 지금은 1학년 때 보다 이 초록이 더 아름답지?"
내가 점점 더 자아에 눈을 떠 가고 있기 때문이야. 그 때 보다 내 자신을 더 많이 알고 그래서 더 여유로워진거야. 그 여유가 초록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게 해 줘. 그래. 심리학자 에릭슨이 자아 발견은 이미 중, 고교 시절부터 시작해야 한다던데, 하지만 나에겐 입시라는 절대 목표 앞에서 자아발견은 철저하게 뒤로 미뤘지. 나 뿐 아니라 거의 모든 우리 나라 아이들이 그랬을꺼야. 그러다가 입시의 달성과 함께 뒤 미루어졌던 모든 과제들이 밀려들면서 나는 그토록 방황하고 불안했던거야.
왜 중, 고교시절 그 무궁무진한 감수성과 가능성의 나이에 우리 나라의 학생들은 주변의 풍경을 제대로 즐길 여유 조차 없을까? 일터에 나아가 남의 돈을 벌어야 하는 직장인이라면 모를까 왜 어린 학생들마저도 이런 끝도 없는 경쟁의식과 불안함을 느껴야 하지? 학생은 충분히 여유로워야 하고 또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사람들이야. 하지만 지금 우리의 교육 제도는 학생이 학생으로서 마땅히 누릴만한 여유마저 가로막고 있어. 교육제도가 우리 모두에게 가장 아름답고 아련한 기억이 될 수 있는 학생 시절을 청소년 시기를 망치고 있는 거야.
’학교와 공부는 다르다. 시험과 공부도 다르다.’ 오랜 방황 끝에 얻은 깨달음 때문에 나는 여유를 느껴. 내가 느끼는 여유를 나누고 싶어. 지금도 내가 걸었던 그 끔찍한 길을 가고 있을 이 나라의 수 많은 학생들을 구해주고 싶어. 다른 길을 보여주고 싶어. 이미 그들 마음속에 어렴풋이 꿈틀거리고 있을 의심과 딴 생각에 믿음을 주고 싶다. 그들에게 알리고 싶어. ‘학교 밖에서도 시험 밖에서도 공부는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오늘 초록 나무에 햇살이 비추어 초록 물결 조각이 빛난다. 2003 년 어느 초 여름에 씀.
P.S: 자연, 예술, 미남, 미녀.. 아름다움은 마음에 감동을 준다. 하지만 그것을 소유하려 할 때, 감동은 번뇌로 바뀐다.
P.S: 요즘엔 다시 초록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어리석은 학교에서 보낸 헛된 세월을 깨닫는다고 해서 그 세월을 돌이키거나 그 노력들을 보상받을 수 있는건 아니니까.. 나는 가까스로 내 날개를 찾았는데 내 날개는 너무 오랜 세월동안 구겨져서 펴지질 않는다. 그렇다고 다시 저 어리석은 굴 속으로 기어 들어가고 싶지도 않다.. 지금 나는 하늘도 땅도 아닌 중간계 이방인이 되어있다.. 밀려드는 후회가.. 날 슬프게 한다.. - 2009.12
P.S: 학창시절로 돌아가는 꿈은 대부분 악몽. 뭔가에 쫒기고 시달린다. 좋은 추억도 없지는 않지만 그 땐 정말 그렇게 살았다. 죽을둥 살둥 열심히. 근데 모두 헛수고였을 뿐이라 더욱 슬프다. 꽃다운 그 시절, 두고온게 너무 많다.. - 2010.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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